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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굳이 독립출판을? - 그럼에도 불구하고(3)
    독립출판 이야기 2020. 5. 11. 22:31

    후암동 '초판서점'에 입고된 모습이다

     

    6. 무조건 해야지! 대신 해볼까? 하는 분들께.

     

    적극 추천해 드린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이전 글 보기↓)

    2020/05/08 - [독립출판 이야기] - 왜 굳이 독립출판을? - 그럼에도 불구하고(1)

    2020/05/10 - [독립출판 이야기] - 왜 굳이 독립출판을? - 그럼에도 불구하고(2)

     


     

    ③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다. –> 잊었던 ‘일의 의미’가 살아나는 과정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셈이다. 어떤 책을 만들지 기획하고 글을 쓰고 다듬고 표지와 내지 디자인 및 인쇄에서 유통, 홍보까지 전부 다 나의 몫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뭔가 엄청난 일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첫 해외여행 때가 생각난다. ‘입국심사 때 영어로 무작정 물어보면 어쩌지? 여행지에서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지?’ 갖가지 걱정이 다 든다. 하지만 막상 한 번이라도 갔다 오면 별 거 아니다. 물론 그냥저냥 하는 것과 하는 건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껏 이렇게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구슬 꿰듯이 해본 적이 없다. 회사를 다닐 땐 언제나 누가 시키는 일을 기한까지 마무리하느라 바빴으니까. 마치 신체 어딘가에 박힌 작은 모세혈관으로서 열심히 기능한 셈이다. 피만 잘 보내면 되지 그 피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물론 알아서 나쁠 건 없지만) 기획 파트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파트가 기획 업무를 한다고 내가 전체 기획을 이러고저러고 만들지는 않는다. 보통은 회사 저 위 높은 곳에서 어떤 이슈가 생겨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추진해 봐!’ 하면 기획 파트원 전원이 불나게 매달려 기획서, 보고서를 만든다. 떨리는 마음으로 보고 시간을 맞이한다. 역시 반려다아오! 다시 보고를 해야 한다. 이번에는 제발…!! (이번에도 안 되면 야근 및 주말 출근 확정이니까!)

     

     

    이것을 정말 ‘기획’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아랫사람이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해 기획하는 경우도 있지만… 빠른 퇴근과 주말을 기다리는 평범한 직장인의 세계에서는 거의 판타지 급 희귀한 이야기니까 일단 패스하자.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많은 유관부서와 상사, 상사의 상사의 (상사의) 컨펌을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고충이 따른다. (대신 이 덕에 조직의 리스크가 줄어들기는 한다) 즉 회사에서의 ‘내 기획’에는 정작 내가 담기기 어렵다. 기획 업무를 하지 않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나사 조이는 사람은 계속 나사만 조이고 도색하는 사람은 끝까지 도색만 한다. 나름 전문용어(?)로 ‘노동 소외’라고 표현된다. 결국 일의 처음과 끝을 파악하기보다는 당장 닥친 일을 기한 내 해내는 게 우선된다. 이렇게 일의 서사(敍事), 즉 스토리가 탈락된 상황에서 우리는 쉽게 지루해진다. 일의 의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의미란 ‘월급 받으니까 해야지 뭐’ 밖에 없다. (저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으로 모든 직장이 이렇단 것은 절대 아닙니다!)

     

     

    계속 이 세계에만 있던 내가 독립출판을 해보니 꽤나 신선한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획도, 작문도, 편집도, 디자인도 다 내가 하고 컨펌도 내가 한다. 유통도 홍보도 나의 몫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너무나 지루할 때가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회사에서의 지루함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니까 괜찮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하겠다고 나선 거니까. 머릿속에서만 맴돌거나 친구들과 술자리 노가리로 소비될 수도 있는 나의 생각과 믿음을 형체화 시켜 전혀 연이 없는 타인에게 돈을 받고 보여준다니. 신선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내 손으로 만든 완성품이라니! (물론 내가 보람차게 만드는 것과 팔리는 것은 절대 별개이다)

     

     

    일의 모든 스토리가 내게 다 있다. 내가 꽉 쥐고 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흰 바탕에 커서만 반짝이던 태초의 순간부터 서점에 진열되어 독자를 기다리는 모습까지 내가 다 알고 있다. 이 한 줄을 쓰기 위해 이렇게 내용이 길어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첫 책이다 보니 꽤나 의미부여를 한 탓 같다. 처음 느낌은 처음 느낌이고,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내다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때 이 글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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