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왜 굳이 독립출판을? - 그럼에도 불구하고(2)
    독립출판 이야기 2020. 5. 10. 13:33

     

    첫 책의 첫 인쇄 감리 때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다

     

     

    6. 무조건 해야지! 대신 해볼까? 하는 분들께.

     

    적극 추천해 드린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① 는다. 분명히 는다. 글도, 생각도.

     

    처음부터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해서 죄송하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부터 해야 글에 조금 설득력이 있을 것 아닌가.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게다가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 한 문장이라도 쓴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큰 성취라고 생각한다. 물론 글쓰기가 남과 비교하여 우위에 서는 수단은 절대 아니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 매일 꾸준히 일정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글로 먹고사는 글쟁이가 아니라면 거의 없을 것 같다. 매일 꾸준히 업로드되는 블로그들의 게시물 중 많은 부분도 타인의 콘텐츠를 가져오거나 적절히 버무려서 내 글 마냥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봐서는 정말로 본인이 궁리하여 완결된 글을 매일 써내는 일이 더럽게 힘들고 드문 일인 것은 확실하다.

     

     

    책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시작하는 것은 이 더럽게 힘든 일을 완수하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더럽게 힘든 대신 성과도 확실하고 크다. 한 문장, 한 문단을 쓸 때 걸리는 시간이 확연하게 줄고 완성도도 올라간다. 거의 매일 쓰는데 문장 구조, 맞춤법, 뉘앙스가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맞춤법은 언제나 틀리는 부분에서만 틀리기 때문에 브런치 등에서 맞춤법 검사를 몇 번 하다 보면 많이 틀리지 않게 된다. 글을 쓰고 몇 분 쉬다 문장을 다시 보면 주술 관계가 안 맞는 것들이 보인다. 이것 역시 자주 어긋나는 포인트에서만 발생한다. 씨익- 내 그럴 줄 알았지! 미소 지으며 고친다. 뉘앙스 : 같은 비유, 같은 단어를 짧은 텀에 반복해서 썼나 확인한다. 이 문단에서 예를 들어보자. ‘언제나 틀리는 부분에서만 틀린다’ <-> ‘자주 어긋나는 포인트’ 두 가지가 같은 뜻이다. 하지만 다르게 썼다. 대중가요도 1절과 2절의 가사가 다른데 나도 그렇게 써야 하지 않겠나. 이왕이면 독자가 조금이라도 더 즐겁고 피로 없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게 일상으로 자리잡기 전에는 글을 쓰기 위한 ‘궁리’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쓸 것, 글로 쓸만한 재료, 번개 같은 영감이 있어야만 비로소 글을 쓰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전혀 아니다.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돼야 생각이 트이고 글이 나온다고 확신한다. 이렇게 말이다 -> ‘티스토리에 적어도 매일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올리겠어!’ 혹은 ‘책을 언제까지 내려면 하루에 이 정도 글은 써야지!’ 일단 책상에 앉아 흰 여백의 MS word를 바라보면 조금 막막하긴 하다. 그래도 써야 하니까 생각한다. 일단 한 단어라도 쓰면 문장이 선명히 연결되는 게 신기하다. 이 글만 해도 그렇다. 맨 처음 제목을 적을 때 내가 이 부분에서 이렇게 쓰고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물론 미리 글의 얼개를 촘촘히 짜서 치밀하게 쓰는 분도 있을 것이다. 개인 성향에 좌우되는 것도 크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확장되며 글의 진도가 나아가는 셈인데, 책을 내기 전보다 이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나름 집필의 고통(?)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기분 좋다.

     

     

     

    ② 하지만 나의 밑바닥을 분명히 느끼게 된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독립출판 관련 글을 쓴 거라고 확신한다. ‘나의 밑바닥’이라고 하니 글을 쓰면서 어떤 예술가적 처절함과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가엾은 어떤 이를 말하나 싶지만 당연히 절대 아니다. 차라리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냥 이도 저도 아닌 모든 것에 미적지근한 나의 ‘찌질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부끄럽고 민망하다.

     

     

    나는 책 한 권을 내는 데 무려 8개월가량이 걸렸다. 사실 첫 책을 내기 위한 독립출판 워크숍을 처음 수강할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미 썼던 글도 모아져 있고, 대충 어떤 글을 쓰면 되겠다 싶은 윤곽도 있었으니 워크숍이 끝나는 5주 뒤면 완성된 책을 튜터에게 보여줄 줄 알았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지금 갖고 있는 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전부 다 말이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매일 꾸준히 집중해서 썼다면 훨씬 빨리 책을 냈겠지만 역시 나의 미적지근한 찌질함이 어디 가질 않는다. 글 쓰겠다고 앉아서 유튜브, 나무위키를 뒤적이는 건 기본이고 평소 읽지도 않던 어려운 책을 괜스레 들추기도 한다. <- 딱 생각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의 학창 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전날이 말이죠…^^

     

     

    이런 날이 반복되면 점점 글과는 멀어진다. 단 이틀 운동을 쉬어도 근육이 빠지는 게 보이는데 글은 더한 것 같다. 다만 근육이 빠지는 것은 보이기라도 하는데 글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며칠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다시 마음잡고 Ms word를 켜면 이제 생각조차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글쓰기 회로가 녹이 슨다. 바람 부는 여름의 막바지 해변가에서 고운 모래를 손으로 꽉 쥐었는데 잠깐 한눈팔아 손아귀가 풀린 틈에 모래가 솨악- 전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조금 쉬면 다시 글 진도가 나가겠지! 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정말 쉬어야 한다면 진짜로 ‘잠깐’쉬어야 한다. 그렇다고 쉴 때는 잘 쉬었나? 그것도 아니다. 글이 잘 안 써진다는 핑계로 꽤나 빈둥댔는데 역시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아 이거 오늘 썼어야 했는데…’ <- 그야말로 미지근한 찌질함이지 않는가!

     

     

    괜한 자기 탓도 한다. ‘내가 왜 굳이 책 쓰겠다고 설쳐서 이 짓(?)을 하고 있지?’ <- 누가 들으면 내가 엄청난 책이라도 낸 줄 알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엔 참 잘 쓰고 잘 만들었지만 남이 보면 그냥 초짜 작가(라고 하기도 민망한)의 서툰 결과물이니까. 하지만 이 서툰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나는 얼마나 나의 찌질함과 밑바닥을 보아야만 했는가. 고통도, 한(恨)도, 죄스러움도 아닌 그냥 ‘게으름’과 ‘귀찮음’에 무너지는 나의 초라함을 말이다.

     

     

    그래서 그 밑바닥을 보지 말자는 게 아니다. 봐서 다행이다. 오랜 시간 잊고 있던 나의 게으름을 잘 알게 됐으니까. 책을 썼다고 부지런해지는 게 아니다. 그냥 나의 게으름이 어느 정도인지 잘 깨닫고 그것을 통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