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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대여점 - 추억은 이토록 예고없이 찾아들고
    신기한 것들 2020. 4. 15. 09:13

    참고로 2000년에 찍은 사진이 아니다. 2020년 4월 11일 토요일의 앳된 사진이란 게 놀랍지 않은가. 

     

    평소 잘 놀라지 않는 성격인데 이번에는 조금 놀랐다. 후암동 언저리 이곳에 동네 책 대여점이 지금도 있을 줄은…! 요새는 거의 만화방으로 바뀌어 시간당 요금을 받는다. 사실 바뀌었다는 표현도 어폐가 있다. 업장이 커야 만화방으로 운영할 수 있다. 원래 엄청 큰 책 대여점이 만화방으로 바뀌었든가 만화방은 그냥 만화방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곳은 무엇인가... 딱 저만큼만 타임슬립 된 느낌이다. 갤럭시 10과 최신 아이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에 스트리트 파이터2(1991년)가 현역으로 가동되는 셈 아닐까? (물론 노량진 정인오락실이 아직 스파2를 운영 중이긴 하다)

     

    덕분에 추억 놀음을 안 할 수가 없군... 책 대여점은 IMF 무렵 최대 호황이었지만 나의 첫 대여점은 1995년 오픈한 은마상가 2층의 ‘은마 책 대여점’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회원번호 ‘379’를 기억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대출이 소년탐정 김전일 1,2권이었다...) 당연히 당시엔 컴퓨터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기에 사장 아저씨가 회원카드에 대여와 반납을 빼곡히 기록하는 구조였다. 카드 하나를 다 채우면 책 몇 권을 서비스로 빌려주는 보너스 스테이지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제일 신기한 것은, 남이 보기엔 낙서로 가득한 그 카드에서 정확히 대여와 반납 여부를 찾고 연체금을 계산하던 사장 아저씨의 모습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대여 반납 관리 시스템에 로그인하면 자동으로 현 기준 연체일을 알려주는 시스템도 없는데 어떻게 하루라도 연체되면 귀신같이 알고 집에 독촉 전화를 했단 말인가…

     

    만화책 신간이 나오는 날이면 대여점이 바글바글 하다. 나름 정보가 빠른 친구들은 출판사별로 신간이 대략 언제 나오는지 알기 때문에 수시로 대여점에 드나들며 자리를 지켰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물론 그 정도가 된 건 몇 년 후의 일이다) 언제나 눈물을 머금고 빨리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건 다른 대여점도 사정이 마찬가지였다. “아 은마 책 대여에 신간이 없어?? 그렇다면… 지하 1층 오락실 옆으로 간다…!” 라며 뛰어가 봤자 이미 신간은 없다. 그래서 쓸쓸히? 오락실에서 킹오파96이나 두들기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바람의 검심, 코난 등이 가장 심했지.

     

    시간이 흐르다 보면 연체료가 쌓일 수밖에 없다. 하루 이틀씩 늦는 경우가 가끔 있어도 하도 많이 빌려 대니까 조금씩 쌓인 게 크다. (물론 그 당시 초딩 입장에서 크단 것) 그럼 사장님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면 연체료가 반으로 낮아지곤 했다.

     

    아무튼 나에게 오락실, 만화방, 책 대여점, 동네 콘솔 게임 샵(이건 이제 아예 없다)은 잠자던 어린 시절 기억을 깨우는 트리거다. 저 오래된 책 대여점 구석탱이 어딘가에 흙 묻은 학교 체육복을 입고 쪼그려 앉아 만화책을 찾던 그때의 내가 있을 것만 같다.

     

     

    마법처럼 존재하는 이곳. 다음엔 꼭 들어가서 사장님과 대화라도 나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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