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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놀음 - 은마상가 떡볶이를 둘러싼 기억들쓸모/없는 소리들 2020. 4. 27. 08:42
20년 넘게 이 자리에 있는 만나분식. 내 기억엔 원래 만나분식은 94,95년에 맞은편에서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은마상가 떡볶이가 생각나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살이 부르르 쪄 버리는 천형을 갖고 태어났기에 차로 슁- 갈 수는 없다. 그래서 강남역부터 걸어갔다.
이 남조선 땅엔 대체 봄이란 있긴 한 것인지...나름 후텁지근한 날씨인데다, 간지와 편의성이 제대로 등가 교환된 말가죽 자켓을 팔에 얹고 가려니 오늘 턱걸이는 안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
역삼동의 개나리 아파트니 뭐시기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이 동네가 이런 동네가 아니었는데 말이지... 만약 20년 전에 내가 이 아파트를 샀으면 나 지금 삶은 어땠을까 헤헤~ 따위의 망상도 몇 번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은마상가다.
아! 역시 그대로다. 이 만나분식. 이 분식집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24년 전,,, 95년에는 맞은편 자리에 있었는데, 주인도 달랐다. 지금 운영하시는 분들은 95년 96년 즈음에 오셨고 지금 자리로는 몇 년 뒤에 옮겼었지.
불변의 구성. 냄새만 맡아도 은마상가 3층 은마태권도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 여튼 맛은 그 때 그대로다. 엄마가 아파서 밥을 못 해주는 바람에 여기서 떡볶이를 샀더니 가는 길에 식어서 죽처럼 걸쭉해진 국물에다 묘하게 더 쫄깃해진? 떡볶이를 씹던 감칠맛나던 옛 기억. 후각 미각 시각 순으로 사람이 무언가를 기억하기가 쉽다는데, 일단 만나분식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길에서 나는 특유의 향기...아, 발 딛자 마자 나는 새파란 엔젤(브랜드 이름임) 면 체육복에 노란 가방, 천 원 두 장을 움켜쥐고 계단을 세 칸씩 두다다 내려가는 초딩이 돼 버리는 것이다.(사실 지금 묘사한 모습은 국민학생 시절이다.)
요새야 뭐,,, 원체 미각의 첨단 아닌가. 온갖 유명한 분식집도 많고 다양한 레시피도 넘쳐대지만 이런 날 것 그대로의 분식이 당길 때가 있는 법... 문방구 옆 학교 옆 오락실 옆에서 땀 흘리며 먹던 그 때 그 맛 그대로다. 이정도면 나름 남조선의 쏘울-푸드라고 봐도 되지 않을지?
오락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실제로 분식집과 오락실은 언제나 붙어있었다.(다른 동네도 거의 같다고 봄) 이 만나분식 바로 옆에도 오락실이 있었고. 93~99년 당시 이 은마상가 지하1층 B블럭(A,B 두 블럭으로 나뉨) 입구는 가히 분식집 군웅할거 시절이었는데, 만나분식 외에 적어도 세 개 이상의 분식집이 모여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름은 다 까먹었지만,,, 그 분식집들에 둘러싸인 오락실 하나가 제대로 똬리틀고 있었지. 오락실은 따로 이름도 없었는데(실제로 간판이 없었음) 창문에 붙어있기로는 '지능계발' '아카데미'...로 기억한다. 대체 지능계발과 뭔 상관이 있지 싶지만 내 삼십 여 년의 짧은 삶에서 단기 집중을 가장 강하고 효과적으로 발휘했던 곳이 바로 그 오락실이었을 테니 나름 지능계발은 어딘가 되긴 했겠다. 어디가 됐는지는 앞으로 알아봐야지.
그런데 놀라운 점은, 만나분식도 그렇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가게들이 많다. 내가 기억하는 가게가 더 많은 것이 신기할 뿐. 만나분식, 유미세탁소, 형제상회(야채집), 만나분식 옆 라인의 과일, 반찬가게들, 마트(옛날에는 해태코스코), 금은방, 보선한의원, 최필선한의원, 은마서점, 일조룡(옛날엔 명궁이라고 해서 은마서점 옆에서 굉장히 크게 했었음), 돈까스 맛있던 식당 '난', 조명업체 '광진조명', 이사업체 황우통운, 은마태권도, 마미치킨... 생각나는 것만 이정도고 더 있다. 이채동 치과라든가.. 도대체 젠트리피케이션이란게 이 세상에 존재는 하나 싶을정도군...
아 이거 만나분식 쓰다가 또 글이 길어졌다. 은마상가를 기회되면 제대로 써 보고 싶은데,,, 은마아파트는 4000여 세대라 상가도 작살나게 크다. 내가 유_초딩 때는 가히... 어린이들의 던전이자 삶의 현장과도 같던 곳이었거늘(하교->은마태권도->학원->오락실->만나분식->만화방->오락실...(반복))
추후 쓰기로 하고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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