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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의 쏘울 푸드 '비야'맛있는 것들 2020. 4. 19. 13:18
남자 셋이서 이 상태면 라면은 벌써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 오랜만에 만끽한 안암의 쏘울 푸드 '비야'.
맛있다. 나에겐 2006년부터 지금까지 13년 동안 꾸준히, 균일하게 맛의 권능을 베푸는 바로 이곳 비야. 부대찌개로 이정도의 행복을 주다니... 맛집대법관이라도 계셨다면 이곳을 국가적 맛집으로 격상하라는 판결이라도 내렸을 정도다. (대법관이 그럴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말자)
대체 어떤 점 때문일까?
이 앞까지 오면 설렘은 제곱이 된다
1. 단짠단짠의 조화
말 그대로다. 맛의 밸런스가 좋다. 엄청 짜거나 맵지 않다. 저녁 일곱시만 되면 얼굴 벌개진 형님들이 이마에 땀 닦아가며 먹는 부대찌개 같은 부대찌개는 아니다.
2. 풍부한 건더기
아주 많은 두꺼운 햄, 적당히 많은 짭짤한 직사각 햄(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국물에 감칠맛을 더하는 갈은 쇠고기, 라면사리와 햄을 반 이상 먹어치우면 기적처럼 등장하는 당면(바닥에 깔려있다), 양파와 파는 필연, 살짜쿵 들어가는 김치. ※ 참고로 콩은 들어가지 않는다.
3.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1과 2
사실 가장 중요하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맛이 변했다고 느낀 적이 없다. 언제나 그때의 그 맛이 지금의 굶주림을 토닥인다.2019년 12월 10일 오늘, 글로벌 age로도 빼도 박도 못하게 리얼 아재가 되고 있는 나는 저 수증기만 쐬어도 2006년 2월 마지막주를 맞이한 대학 새내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2박3일의 새터(신입생OT)를 끝내고 속초에서 돌아오자마자 술을 들이붓고 맞이한 다음날 아침, 해장엔 '이것'만한 게 없다며 선배들이 데려간 식당이 바로 이곳이었다.
'아 대학이란 이런 곳인가...' 하며 축 늘어진 다크서클에 송송 땀을 맺어가며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선하다. 당시엔 개운사 가는 길 말고 고려마트 맞은편 삼거리 모퉁이에 있었다. 그 후로도 학생식당, 교우회관 식당 등 가성비 음식에 지칠 때마다 나름 '큰 맘'먹고 가곤 했다. 스스로에게 상을 주듯이 말이다. (비야는 매일 먹기엔 학생에겐 살짝 어려운 가격이었다)
케첩 머스터드의 커스터마이징 가능성 그리고 단짠의 조화가 돋보이는 단무지까지...! 4. 밑반찬(사실은 감자튀김)
비야 하면 이게 핵심이다. 무한리필되는 감자튀김. 부대찌개에 이 감튀가 상상 외로 잘 어울린다. 물론 나같이 돼지족속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와! 감자튀김이 부대찌개랑 잘 어울리는구나! 이걸 이제 알다니!! 라고 '의식적으로' 좋아한다기보단 '부대찌개와 튀긴 감자 둘 다 좋다. 그런데 두 개 다 한 테이블에 있다' 정도로 생각한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내가 돼지족속운명인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이 감튀가 비야의 부대찌개와 묘한 하모니를 만드는 건 확실하다.여튼 성질 급한 돼지족속들은 찌개가 끓기도 전에 감자튀김을 한 접시 다 먹고 리필하기 십상이다. 소스도 케첩과 머스타드를 반반씩 주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찍어먹을 수 있다. (물론 먹다보면 섞인다)
그리고 달짝지근한 단무지. 감튀와 부대찌개가 의도없이 안기는 느끼함을 잡아준다. 앞선 매운왕돈까스 글에서도 이미 느끼셨을 분이 계시겠지만 나는 비야에서도 이 단무지는 무조건 리필한다. (감튀는 한 번 리필이 아닌 경우도 있어서 굳이 얘기하지 않는다)
5. 입가심 탄산음료
13년 전 겪었던 센세이셔널한 요소. 식당에서 최소 천 원은 내야 먹는 탄산음료를 그냥 준다. 종류는 콜라, 사이다, 환타 오렌지, 환타 파인애플. 대충 2010년 부근에 환타 파인애플이 추가된 이후로 변치 않는 라인업이다. 나는 보통 비야에서는 환타 파인애플을 먹는다. 환타 파인이 평소 자주 보이지 않는데다가, 요상하게 비야에서는 콜라보다 환타 파인이 당긴다.6. 사장님
좋은 분이다. 나와 동기들에게 2006년 12월 경 나그네파전과 조개구이를 사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 가든 날 기억해주심에 고마울 따름이다. 부디 오랫동안 잘 비야를 꾸려주시길 하는 작은 바람만 몰래 보내드린다.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닥을 보인 부대찌개. 삶의 행복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 온다.
한 상권에서 10년 넘게 식당이 유지되고 있는 건 엄청난 일이다. 꾸준히, 균일하게 산출물을 낸다는 게 멋지다. 당장 내 인생이 그렇지 못해 문제군. 비야의 부대찌개가 나보다 더 낫다니... 이젠 음식에서도 교훈?을 얻는 걸 보니 진정한 아재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버린 게 아닐까... 뭐 어쩔 수 없지.
참고로 비야는 무알콜 원칙이었지만 요새는 주류도 판매한다. 괜히 추억여행하겠다고 점심부터 비야가서 낮술하고 그대로 리타이어 하고싶은 학교 관계자?나 부대찌개를 좋아하는 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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