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홍대입구 식스티즈 - 60살까지 먹고 싶은 햄버거집
    맛있는 것들 2020. 4. 23. 12:32

     

    이 아름다운 모습 앞에 나는 거의 코를 박고 싶어지는 것이다


    물론 내 글을 조금이라도 읽었던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60살 이후에도 먹고 싶다는 뜻이다.

     

    놀랐다. 이 가격에 이런 버거를 먹을 수 있다니. 기본인 치즈버거가 3천 원이고 패티 하나 더 얹는 데에 1,200원만 추가된다. 아니다. 가격부터 이야기하는 건 도리에 어긋난다. ‘햄버거’라는 음식의 순수한 정체성이 극대화된 맛이다. 조용필의 명곡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가사를 떠올려보자.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햄버거가 현세에 나타난 지 어언 수십 년이 지났고, 우리의 취향은 오리지널리티 대신 변형되고 믹스된 혼종 버거들에 점령당했다. (물론 오리지널리티만 짱이고 나머진 별로라고 깎는 게 절대 아니다) 사실 이 남조선에서는 빵과 야채와 치즈, 그리고 패티로만 구성된 잘 만든 ‘기본적인’ 햄버거를 찾기 어렵다. (프랜차이즈는 논외로 하고) 하지만 이 버거는 정확한 기본기로 묵직한 한 방을 선사한다. 먼 길 떠난 우리에게 사실 소중한 것은 옆에 있다는 걸 알려주듯이 말이다.

     

    크기가 크지는 않다. 남자 손의 평균인 내가 한 손으로 들고 먹기 딱 좋다. 하지만 한 입 먹으면 양이니 크기 같은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소룡의 촌경(寸勁)은 말 그대로 1 inch 펀치로서 작은 움직임에 비해 위력이 발군이다. 마찬가지 아닐까. 물론 이소룡이 도움닫기 풀 스윙으로 때리면 촌경보다 더 강하듯이 이 버거도 크게 만들면 만족도는 2배 이상일 것이다. (물론 나 같은 돼지 족속에게 해당되긴 하지만)

     

    더군다나 앞서 소개했던 우사단길의 ‘미진호프’처럼 이곳도 주문 후 패티를 굽고 버거를 만든다. 즉 이 사진만 봐도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지지 않는가. 갓 구워진 패티와 슬슬 녹고 있는 치즈, 그리고 신선한 토마토와 야채들의 협연 말이다.

    심플한 메뉴판. 버드와이저 병도 4천원 뿐이다. 대체 이곳은...

     

    다시 가격 이야기를 해보자. 이 값에 이런 버거를? 최근 몇 년 간 유행했던 ‘수제’ 버거집의 가격이 떠오르는데 식스티즈의 버거가 너무 싼 것인지 수제 버거집이 너무 비싼 것인지 감이 안 온다. 혹시 햄버거 덕후가 계신다면 보충 설명을 부탁드린다.

    영화에서나 보던 그 시절의 아우라가 있다

     

    상호인 ‘식스티즈’만으로도 알 수 있지만, 매장의 인테리어나 버거 스타일을 보건대 그 시절의 클래식을 좇고자 함이 분명하다. 영화 그린북(2018)을 보신 분이라면 감이 올 것이다. 주인공 토니 발레롱가의 아내에게 쓰는 연애편지를 돈 셜리가 코칭해주는 장면이 있다.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대놓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식스티즈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 장면이 떠올랐다. 분명 ‘그 당시’의 사람들도 토니가 입은 셔츠를 입고 진한 포마드 머리를 한 채 더블 치즈버거에 치즈 감튀를 시켰을 것이다. (영화도 60년대가 배경이다)

    꼭 이 햄버거가 저들 손에 들려있을것만 같다. (영화 '그린북' 중)
    토니(오른쪽)의 저 셔츠와 포마드 헤어가 딱 60's 감성을 대변한다

     

     

    또 놓칠 수 없는 디테일이 있지. 매장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이다. 내가 또 음악까지 구닥다리 취향 아닌가. 나의 최애 훵크(Funk)곡들이다. 버거를 먹으며 주워 담은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기회가 된다면 꼭 들어보길 바란다. (출근길에 최적)

     

    - Taste of Bitter Love(Gladys Knight & The pips) (1980)

    - You(The McCrarys) (1978)

    - Coming to you Live(Charles Earland) (1980)

     

    엄밀히 60년대 곡은 아니지만 뭐 어떠냐. 버거를 씹을 때 두근대는 내 마음 마냥 몸도 이미 저 노래들에 비트를 타고 있다… 이젠 어쩔 수 없다. 되는대로 자주 먹으러 갈 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