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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놀음 - 대학 썰(2) : 시험기간의 편린
    쓸모/없는 소리들 2020. 4. 19. 00:50

    코로나로 셧다운된 열람실 대신 카페에 학생들이 모인다.


    오랜만에 모교 근처 까페에 들어서니 근 10년 전의 기억이 영사기로 촤르륵 돌아간다. 이 익숙한 사람내음… 그립다고 하기엔 조금은 신물나는 애매한 땀내… 24시간 열람실의 그 향기 아닌가!

    그렇다. 코로나로 열람실이 폐쇄된 탓에 갈 곳 없는 학생들이 모인 탓일까. 저마다 과제에 시험공부로 정신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슬며시 나는 미소짓는다.

     

    ‘훗훗… 자네들 말이야. 철학과였다면 발표도 과제도 없이 한 학기를 즐겁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매우 안타깝구나!?’


    물론 철학과에도 함정이 있다. 한 학기동안 배운 내용을 기승전결 갖춰 한번에 다 쓰라는 정도의 너무나 예상 가능한 문제가 나오는 게 문제다. (물론 안 그런 과목도 많지만) 예를 들어 ‘중국선진철학’ 수업이라면 이런 식이다.

    ‘선진(先秦)시대의 대표 학파를 소개하고 그 중 한 학파를 택하여 그것이 현대에 시사하는 바를 본인의 관점으로 논하시오’

    이런 식이라면 ‘배운 걸 다 쓰되 네 생각도 잘 써야지 안 그러면 다음 학기는 커녕 내년에 날 또 보게 될 걸?’ 인 것이 틀림없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기에 놀랄 필요는 없다. 어제의 밤샘이 헛되지 않게끔, 그나마 얕은 기억이 유지되는 지금 부지런히 모나미 153을 놀릴 따름이다.

    그나마 흥미가 1그램이라도 있는 과목은 공부라도 어찌어찌 했지만 안 그런 과목은 대체 어떻게 공부한 거냐…(물론 그런 과목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학점이 그 모양은 아니었을 테지만)

     



    글 쓰다 보니 금새 자리가 텅텅 빈다. 요고요고 다들 술 마시러 놀러갔구만. 결국 이 세상은 수업에 없는 결석자, 그리고 지각자에 의해 움직인다고 빨개진 얼굴로 조용히 열변을 토하시던 ‘프랑스 문학과 영화’ 교수님이 떠오르는군… 그날도 뭔가 하다가 20분이나 늦어서 슬쩍 들어가려는데 날 칠판 앞에 세우시더니 “여러분! 그 지각자가 왔습니다! 모두들 박수를 쳐줍시다!” 해서 엉겁결에 박수 받고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대중에게 박수 받을 일이 얼마나 있으려나. 묘한 카타르시스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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