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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생기, <인간으로서의 역동성>에 관하여 - 마의 산 中
    쓸모/있는 것들(공부 및 독서) 2020. 5. 9. 23:12

    이렇게 봐서는 책 두께의 포스를 실감할 수 없다

     

    최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고 있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페이지 수에 짐짓 땀이 흐르지만 이제 꾸역꾸역 하권을 독파 중이다. (상,하권 모두 800페이지 씩이다...) 

     

    아직 완독하진 않았지만 읽는 도중 뇌리에 박히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 삶이 잔혹하다고 비난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삶으로부터, 자신이 태어난 삶의 형태로부터 쉽게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엔지니어 양반, ‘삶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나는 그것을 알고 있어요. 여기서는 날이면 날마다 보거든요. 
    이곳에 올라오는 젊은 사람은 (그리고 이곳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거의 젊은이들 뿐입니다) 늦어도 반년만 지나면 시시덕거리는 것과
    체온 말고는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늦어도 일 년만 지나면 다른 생각은 전혀 품을 수 없게 되고, 
    다른 생각은 죄다 ‘잔혹하다’고,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잘못됐으며 무지한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 그는 하루 종일 체온계를 입에 물고 누워 지냈을 뿐 다른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신들은 그걸 몰라요.’   ‘그게 어떤 것인지 알려면 저 위에서 살아 보아야 해요. 이 아래에는 기본 개념이 결여되어 있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 그래서 그는 다시 이곳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


    – 토마스 만 저, ‘()의 산’ (을유문화사, 2008)

     

    산 꼭대기 요양원에 있는 사촌을 문병하러 온 주인공이 그곳에서 요양 중이던 이탈리아 출신의 인문주의자 세템브레니에게 듣는 충고 중 일부 내용이다. 스스로의 현재를 동정하고 애처로워하기만 한다면 그의 곁에서 뛰놀던 삶의 가능성과 생기가 사라지고 일상이 부패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살면서 자신을 동정하지 않기란 참 어렵다. 바꿔 말하면 아프거나 어떤 큰 문제가 있을 때조차 생기를 잃지 않고 현재를 살아내는 게 정말 가능할까 생각도 든다. 나는 지금으로썬 큰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긴 하다. 다만 작은 문제들이 생길 때 스스로를 쉽게 동정하기보다는 건강한 생기를 잃지 않게끔 잘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동정 뒤로 숨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올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신체 혹은 정신의 압도적인 아픔에 대개 무너지기 마련이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드무니까 그것을 소재로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인간극장 같은 다큐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나의 고통이 크든 적든 건강한 생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다만 이렇게 건강하고 에너지가 있을 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 한다. 생기는 현재에 몰입할 때 가장 크게 뿜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매이지 않고 미래만 바라보지도 않으며... 

     

     

    건강한 생기를 갖는 것. ‘지금의 감각에 열중해 본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두 발 땅에 딛고 숨 쉬는 현재에 집중한다. 살아있음을 느끼며, 설령 내 모든 감각이 허상이라고 해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오늘도 삶의 주인으로 살겠다 다짐한다.

     

     

     

     

    완독 후 다시 리뷰를 남길 예정이다. 다만 양이 양인지라 얼마나 걸려 다 읽을지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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